돌멩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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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불꽃 튀는 화산들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
2008-04-22 09:36:02 - 작성자곶자왈 () 조회수3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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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앤드루 마셜____사진 : 존 스탠마이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불꽃 튀는 화산들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
기사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살짝 공개합니다.
지옥이 눈앞에 펼쳐지기 직전인데도, 자바 섬의 키나레조 마을에 사는 농부 우디(60)는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메라피 화산 꼭대기에서 마을까지의 거리가 고작 4.5km밖에 안 되는데도, 유독가스가 분출되고 불안한 진동을 감지한 지진계가 폭발 임박을 알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부당국이 주민들에게 전면 대피령을 내렸지만 그래도 우디는 요지부동이다. “난 여기가 편안하다오.” 그는 말한다. “문지기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도 꼼짝하지 않을 거요.”
메라피는 타고난 살인마다. 숲과 평지 위로 3000m 가까이 솟아 있는 이 화산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이다. 메라피라는 이름 자체가 ‘불의 산’을 의미한다. 1930년에는 이 화산이 폭발해 1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평상시에도 산봉우리에서 연기기둥이 무섭게 솟아오른다. 현지 재해예측도에 따르면 일부 주변지역에선 “화산쇄설류, 용암, 낙석, 유독가스, 벌겋게 달아오른 암석파편 분출이 빈번하다.” 2006년 5월 화산의 굉음이 점점 커지자 비옥한 경사지에 살던 주민 수천 명이 마지못해 낮고 안전한 지대의 임시거처로 이동했다. 현지 원숭이들도 떼를 지어 내려왔다.
하지만 우디와 마을 사람들은 내려가지 않았다. 박하향 담배를 즐기고 번쩍이는 틀니를 낀 80대 노인 때문이다. 노인의 이름은 음바 마리잔, 화산의 ‘문지기’다. 우디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과 마을에서 남쪽으로 32km 떨어진 욕야카르타 주민 50만 명의 운명이 그의 가냘픈 어깨에 달려 있다. 그의 임무는 메라피 정상에 산다고 전해지는 도깨비를 제사를 올려 달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사의 효험이 덜했던 모양이다. 화산폭발의 조짐이 점점 급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화산학자들, 군사령관들, 심지어 인도네시아 부통령까지 나서서 그에게 대피해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그는 딱 잘라 거절한다. “당신의 임무가 내게 떠나달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마리잔이 경찰에게 말한다. “나의 임무는 여기 머무는 것이라오.”
다른 곳에서라면 마리잔의 이런 행동이 자살행위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활동성 강한 환태평양 화산대의 서쪽에 자리한 1만 7500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곳은 지구물리학적 파괴력이 미치는 곳으로, 태평양을 고리 모양으로 둘러싼 지각판들의 충돌선상(4만km가 넘음)에 놓여 있다. 지리학적으로 인도네시아는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곳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이곳엔 활화산이 129개나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 활화산 곁에 이토록 가까이 살고 있는 나라는 인도네시아밖에 없다. 자바 섬에만 30개가 넘는 화산의 그늘 아래 1억 2900만 명이 살고 있다. 이처럼 화산 근처에 살다보니 지난 500년간 화산폭발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 14만 명이 넘는다.
화산에 의한 죽음은 그 형태도 다양하다. 뜨거운 용암에 타 죽거나 진흙 더미에 깔려 질식사하거나 아니면 폭발에 곧잘 뒤따르는 쓰나미에 휩쓸려 죽는다. 1883년 자바 섬 연안에 있는 크라카타우 화산(종종 크라카토아 화산으로 잘못 쓰임)이 폭발했을 때도 쓰나미가 3만 6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마리잔에게 화산폭발은 위협은커녕 당연한 화산활동의 일환이다. “메라피 왕국이 확장되고 있는 게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메라피 화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그가 말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화산은 삶의 한 단면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화산재가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준 덕에 자바 섬 농민들은 일년에 3모작을 할 수 있다. 화산이 하나뿐인 이웃 보르네오 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농사를 떠나서도 화산은 복잡한 신비주의적 신앙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러한 신앙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사로잡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화산 봉우리는 성인과 순례자를 끌어들이고, 화산폭발은 정치변화와 사회격변의 징조가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화산이란 신비주의, 현대적인 삶, 이슬람교와 다른 종교가 따로, 또는 함께 뒤섞이는 문화적 용광로인 셈이다. 여러 인종, 종교, 언어가 혼재하는 인도네시아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바로 화산이다.
총 8대의 지진계로 메라피 화산을 감시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기구 ‘화산학 및 지질위험완화센터’가 현대 과학을 대표한다면, 메라피 화산의 문지기 마리잔은 극단적인 신비주의 신앙을 대표한다.
지난밤엔 정부의 화산학자들이 최고 수위의 위험경보를 발령했다. 용암 원정구(용암이 분화구의 위나 주위에 엉겨 붙어 생긴 원형의 언덕)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이번엔 마리잔이 정부의 청을 받아들일까?
마리잔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위험경보는 화산 신령과는 한참 동떨어진 인간들의 추측에 불과하다는 태도다. 용암 원정구가 무너진다고? “그건 전문가들 얘기고 나 같은 멍청이 눈에는 어제랑 달라진 게 없구먼.” 그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출처 : http://www.nationalgeographic.co.kr/feature/index.asp?seq=45&artno=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