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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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제주희귀식물 닭의난초
2008-12-23 09:45:40 - 작성자곶자왈 () 조회수10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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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꽃잎은 꿀벌들의 비행활주로
[김봉찬의 제주희귀식물 (49)]닭의난초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 닭의난초.
닭의난초라는 것이 있다. 검붉은 빛을 띠는 꽃의 색이 토종닭의 깃털색깔과 유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기품어린 난과 닭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지만 재치 넘치는 해학이 느껴진다.
닭의난초(Epipactis thunbergii A. Gray)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이남지역에 자생한다. 다 자라면 키가 30cm 가량 되는데 줄기는 털이 없이 매끄럽고 잎은 어른의 손가락보다 짧거나 길며 좁은 난형으로 끝이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은 6~7월경에 피는데 몇 송이가 차례지어 총총히 난다. 개체마다 다소 색의 차이가 있는데 보통 황갈색이나 검붉은 색을 띤다. 포는 뚜렷하며 날개처럼 옆으로 열려있고 입술꽃잎이라 부르는 순판은 안쪽에 홍자색의 반점이 선명하다.
순판의 무늬는 곤충들에게 꿀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고 자연스럽게 꽃가루를 곤충의 몸에 묻게 할 수 있는 자리를 잡아주도록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난초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꽃잎 중 아래쪽 가운데 꽃잎의 경우 무늬가 나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러한 꽃잎무늬를 공항활주로에 비유하기도 한다. 꿀벌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꽃이 마련해놓은 활주로라는 것이다.
닭의난초는 주로 햇볕이 잘 드는 고산지역의 양지바른 습지에 서식한다. 제주에서는 대표적인 자생지가 천백고지 습지다. 20여 개체가 소규모 군락을 이루어 무리지어 자라는데 닭의난초 이외에도 큰방울새란, 청닭의난초, 잠자리난초 등 희귀한 습지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자생하고 있다.
천백고지 습지는 물론 지금도 아름답지만 20~30여 년 전 한라산 고산들판과 더불어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꽃밭이었다. 봄이면 꽃창포군락이 습지를 뒤덮고 뒤이어 애기원추리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려 초여름 싱그러운 햇살 사이로 눈부시게 빛났었다. 가을이 되면 한라부추가 보랏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 한가득 꽃을 피워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한라부추 군락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특히나 꽃창포와 애기원추리의 경우 대규모 군락을 이루었던 식물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모두 노루의 훌륭한 먹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닭의난초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게다가 닭의난초의 경우 근경을 뻗어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미약하여 번성이 왕성하지 않고 식물체 조직도 부드럽고 연약해 노루피해에 대책이 없다. 간혹 꽝꽝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닭의난초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꽝꽝나무의 잎과 가지가 치밀하고 단단하게 나있어 보호벽 역할을 해주는 듯싶다.
자연의 균형은 하나를 지켜낸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합적인 사고와 장기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닭의난초는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도 좋다. 보습력이 좋고 산성을 띄는 피트베드에 키우면 잘 자란다. 아름다운 습지식물을 가까이 두고 지켜보는 일은 참 욕심나는 일이다. 꽃을 볼 때마다 습지의 멋진 풍광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니 말이다. 천백고지에 다시 꽃창포와 애기원추리 군락이 한가득 피어나기를 바라본다.
2008년 1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