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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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제주희귀식물 손바닥난초
2008-12-17 10:35:44 - 작성자곶자왈 () 조회수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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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초원서 사라지는 귀한 식물
<김봉찬의 제주희귀식물> 손바닥난초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이름이 손바닥난초인걸 보니 분명 어딘가 손바닥처럼 생긴 곳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손바닥을 닮은 곳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정답은 땅 속에 있기 때문이다.
▲ 손바닥난초
손바닥난초(Gymnadenia conopsea (L.) R.Br)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시베리아 등지에 자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 백두산 등의 고산지대 습초지에 서식한다. 생김새를 살펴보면 몇 장의 잎이 선형으로 길게 자라는데 끝이 뾰족하고, 6~7월경 꽃대가 나와 자그마한 홍자색 꽃이 여럿 모여 달린다. 뿌리는 잔뿌리가 없이 굵고 도톰한 괴근(덩이뿌리)의 형태인데 그 모양이 꼭 어린 아이의 도톰한 손바닥 같이 생겼다. 손바닥난초라는 이름은 바로 뿌리의 모양을 따서 부른 것이다.
손바닥난초가 자라는 곳은 고산지대의 풀밭이다. 억새밭같이 풀의 키가 매우 크고 건조한 풀밭이 아니라 초원의 초기단계의 초장이 짧고 물기가 있는 풀밭에서 다른 야생화들과 어우러져 나타난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한라산의 손바닥난초가 다른 지역의 것과 조금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고산식물을 소개하면서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한라산의 식물들은 강한 바람과 혹독한 기후에 적응하면서 다른 지역의 식물들과 달리 키가 작고 수형이 단단하며 가지가 치밀하고 촘촘하게 자라는 특성이 있다. 손바닥난초 역시 얕은 표토와 강한 바람의 영향인지 식물체가 20cm 정도로 아주 작게 자란다.
물론 필자도 처음에는 손바닥난초가 그저 원래 이렇게 작은 식물이려니 했었다. 그런데 몇 해 전 백두산과 압록강 일대에서 식물탐사를 하면서 그곳에서 본 손바닥난초는 키가 훌쩍 자라 70~80cm 크게는 1m 가까이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백두산의 정상부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산지대로 수목한계선 주변으로 다양한 고산식물들이 서식한다. 메마르고 거친 암반 틈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진귀하고 아름다운 고산식물들이 매년 꽃을 피우면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보다 해발이 낮은 지대에는 울창한 침엽수림과 대규모의 초지가 펼쳐지는데 손바닥난초가 자생하는 곳이 이곳이다.
침엽수림대 가장자리나 숲 속에서 산불 등의 요인으로 나지대가 형성되어 천이의 초기단계인 초지가 나타나는 경우 손바닥난초의 자생지가 형성된다. 이러한 곳은 숲이 있던 곳으로 기반의 토양이 토심이 깊고 양분이 풍부하여 식물의 성장이 원활하다. 같이 어우러져 자생하는 식물들도 냉초, 곤달비, 부채붓꽃 등 키가 큰 초본류들이다.
필자가 처음 백두산에서 손바닥난초를 보고 놀랐듯이 다른 지방의 학자들은 한라산의 손바닥난초를 보고 흥미를 보이리라 생각한다. 독특한 지형적 특성과 기후여건은 이렇듯 한라산의 식물들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식물들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한라산의 손바닥난초는 해발 1,400m 이상 되는 초원지대에 나타난다. 지난번에 소개한 나도제비란처럼 볕이 잘 들고 산소가 풍부한 수분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습초지에서 서식한다. 시로미, 눈향나무, 털진달래처름 키가 작은 고산관목림 사이에서 설앵초, 나도제비란, 잠자리난초 등과 어우러져 자생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손바닥난초는 한라산 등산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와 이에 따른 조릿대의 번성으로 다른 고산식물들과 더불어 손바닥난초 또한 위협을 받고 있다. 관상가치가 높아 일부 몰상식한 등산객들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제는 몰래 가지고 갈 것도 없을 만큼 보기가 어려워졌다.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식물들이 점차 속수무책으로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008년 0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