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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 제주희귀식물 나도제비란

    2008-12-17 10:29:23
  • 작성자곶자왈 () 조회수3225

  • 아름다운 매력지닌 대표적 야생난


    [김봉찬의 제주희귀식물]나도제비란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난(蘭)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식물이다. 특히나 유교문화권에서는 거름을 탐하지 않고 바위틈에서 꽃을 피워내는 것이 군자의 기상과 절개를 닮았다하여 매화,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로 불리며 사랑을 받아온 식물이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난을 기르며 가꾸는 것을 즐기고 있고 글과 그림에서도 난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기에 바쁘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난은 심비디움(Cymbidium)이 아닌가 싶다. 심비디움은 난초과에 해당하는 속명으로 전 세계적으로 50여 종 이상이 자생하고 다양한 품종들이 개발되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식물이다. 각각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심비디움이라는 속명으로 대표되어 불린다. 꽃집에서 흔히 보는 꽃이 크고 색이 화려한 심비디움뿐만 아니라 한란, 춘란 등도 모두 심비디움 속에 해당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매력을 지닌 야생난들도 많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나도제비란도 그 중 하나다. 나도제비란(Orchis cyclochila Maxim.)은 난초과에 해당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식물인데 한라산 해발 1,300m 이상 지역의 숲 속과 곶자왈지대에서 자생한다. 생김새를 살펴보면 줄기 밑동에서 주걱처럼 생긴 둥근 잎이 하나씩 붙어나고, 5~6월경에 연분홍색의 크고 고운 꽃이 두어 송이 정도 피어난다.


    나도제비란의 대표적인 특징은 커다란 순판에 있다. 난과식물들은 꽃잎 중 일부가 잎술모양으로 독특하게 발달하는데 이것을 순판이라고 한다. 헌데 나도제비란의 경우 다른 꽃잎에 비해 순판의 크기가 도드라지게 크고 짙은 자색 반점이 또렷하여 확연하게 눈에 띈다. 나도제비란이 숲 속에서 군락을 이루지 않고 몇 개체 씩 점생하는 이유로 순판이 발달되었을 수도 있고 수분을 매개하는 폴리네이터와의 관계로 인해 순판이 발달했을 수도 있다. 아직 폴리네이터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시각적인 정보에 의지하는 나비나 벌 종류일 확률이 높고 꼬리처럼 길어지는 거(꿀주머니)가 있는 것을 보면 벌보다는 입이 긴 대롱처럼 생긴 나비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보통 나도제비란이 자생하는 곳은 온대북부지역의 침엽수림과 교차되는 비교적 햇빛이 적당히 드는 숲 가장자리이다. 부드럽고 연한 조직의 잎과 줄기나 근경이 발달하지 않는 뿌리구조를 보아도 숲속식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헌데 필자의 경우 독특하게도 한라산 고산지대의 풀밭에서 처음 나도제비란을 접했었다. 대학시절 나도제비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던 탓에 그저 초원에서 자라는 식물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리산, 명지산, 덕유산 등지를 돌아보고 여러 자료를 접하면서 나도제비란이 숲속식물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라산에서는 초원지대에 나타나는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조릿대의 영향으로 대부분 자취를 감췄지만 20여년전 필자가 처음 나도제비란을 보았을 당시는 윗세오름, 장구목 일대의 고산 초원지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헌데 나도제비란이 자생하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초원지대와 다른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물이 정체되지 않고 바위틈이나 사면을 따라 물빠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항상 산소가 풍부한 수분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곳이었다. 햇볕이 잘 들고 토심이 얕은 고산 초원지대 내에서 물이라고 하는 변수로 인해 생장율이 현저하게 높고 경쟁이 치열한 다른 초원식물들의 번성을 제한하면서 나도제비란과 같은 숲속인자가 초원으로 영역을 넓혀 생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도제비란과 함께 자생하는 식물들 역시 비슷한 습성을 지니고 있는데 한라부추, 물매화, 설앵초 등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자생지의 특징 중 하나는 곶자왈이다. 그 중 절물휴양림 일대에는 나도제비란의 분포도가 매우 높다. 거기다 복수초, 변산바람꽃 등 온대북부림의 대표적인 인자들이 함께 서식하고 있어 식물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지역이다. 더욱이 이 일대는 나도제비란이 서식하는 일반적인 자생지에 비해 해발고가 현저하게 낮은 지역이다. 그러나 한라산의 북사면으로 강수량이 풍부하고 여름철 기온이 서늘하며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까지 눈이 녹지 않고 남아있는 미기후로 인해 온대북부 식물들과 난대식물이 공존하는 매우 독특한 식생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도제비란의 서식지는 제주가 갖는 지리적,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자생지 환경을 조성하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도제비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깊거나 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활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다른 야생난들처럼 간혹 불법도채되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2008년 0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