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은 곶자왈은 이미 곱디 고운 숨결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긴 겨울을 견뎌내고도 끝내 싹 틔우지 못하고 꽃피우지 못하는 곶자왈은 4월이 잔인하다.

어디든 개발광풍에 시달리지 않는 곳이 있겠냐만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찾은 도너리오름 곶자왈 탐사는 차라리 비극미를 감내해야 하는 탐사다.

4월 탐사는 부쩍 빨라진 해돋이에 맞춰 출발시간을 8시 30분으로 앞당겼다.

토요일(23일) 일정인지라 그런지 탐사에 참여한 회원들이 많이 바뀌었다.

이번 탐사일정은 최근 개발과정에서 신음하고 있는 월림신평곶자왈이 시작되는 도너리오름으로 잡았다.

월림신평곶자왈은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일대에 위치한 도너리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한림읍 월령리와 대정읍 영락리 두 갈래로 흘러 만들어낸 최대 곶자왈지대다.

하지만 이 일대는 각종 개발행위로 훼손이 가장 많이 된 곳으로 생각만해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미 라온골프장이 들어선 데다 블랙스톤 리조트 개발과 채석장이 들어서면서 생채기가 날대로 난 곳이다.

더군다나 얼마전 블랙스톤 리조트 개발로 제주특산식물인 가시딸기 군락지가 크게 훼손된 데이어 최근에 또다시 원형보전지구가 훼손됐다는 소식은 한말을 잊게 한다.

오늘 탐사목적이 개발로 인한 대표적 곶자왈 파괴지에 대한 현장 탐사라는 앞선 설명이 굳이 필요없을 정도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곳이다.

탐사에 참가한 회원 20명은 블랙스톤 리조트 동쪽으로 난 대체도로를 따라 걸어들어갔다.

불과 2년전만해도 드넓은 숲만이 보이던 곳이나 이제는 길거리 공사현장을 떠오르게 할 만큼 도로 한쪽은 골프장공사가 한창이고 도로 한쪽은 광역수자원개발공사가 한창이다.

대체도로는 블랙스톤 리조트 내에 포함된 목장진입로를 대신해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사업부지 밖으로 도로를 내면서 자연림을 훼손해 과연 곶자왈 보존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더욱이 얼마전 대체도로 일대를 조사한 결과 세계적 희귀식물인 제주특산식물 가시딸기 대규모 군락이 발견돼 기쁨과 함께 안타까움도 큰 곳이다.

숲길을 걸어가는 회원들도 도로개설 현장을 보면서 너나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가시딸기 군락지를 찾은 회원들은 처음 만나는 식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하얀꽃이 활짝핀 가시딸기를 사진에 담고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탐사반은 먼저 와있던 반가운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기쁨도 느꼈다.

우리나라 최고 식물학자인 이영노 박사가 가시딸기 군락발견 소식을 듣고 미리 와 조사하고 있었다.

85세 나이에도 여전히 식지 않는 식물사랑과 함께 현장을 찾는 열정이 부럽기만 했다.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과 제주사람들이 곶자왈 보존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는 말에 마음은 더욱 무겁다.

목장길을 따라 도너리오름으로 오르는데 향긋한 냄새로 유명한 남산제비꽃과 할미꽃, 솜나물, 진황정 따위를 다시 만나는 기쁨에 가슴 설렌다.

도너리오름은 2년전 탐사때 희귀식물인 차꼬리고사리와 왜구실사리가 발견된 곳이다.

돌틈을 뒤지며 차꼬리고사리를 찾는데 개체수가 부쩍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차꼬리고사리가 자생하는 일부 화산체가 무너져 내려 식생환경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자연적 현상일수도 있으나 최근 늘어난 발길이 자생지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죄를 짓는 것 같다.

정상주변을 가볍게 둘러보며 발길을 줄여주는 것이 소중한 자원을 보존하는 길이라는 판단에 분화구 밑으로 내려가는 것은 포기했다.

바위수국과 등수국, 산수국, 세뿔석위와 같은 예전에 봤던 식물을 떠올리면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안위했다.

정상은 두 갈래로 나뉜 곶자왈 지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차마 눈을 두기가 두렵다.

몇해전 그 푸르던 곶자왈은 헐벗을 대로 헐벗은 상태다.

곶자왈 깊숙이 파고든 골프장과 채석장….

곶자왈이 이토록 죽어가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저들을 죽이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4월은 곶자왈에게도, 슬픈 탐사를 하는 우리에게도 잔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