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다는 3월을 눈앞에 둔 날인데도 새벽부터 내리는 눈이 온 섬을 하얗게 만들고 있다.
아침부터 몇몇 회원들이 탐사를 갈 것인지를 묻는 전화를 걸어올 정도로 탐사에는 좋지 않은 날이다.
1월 첫 탐사때도 비날씨로 힘겨웠는데 이번 탐사도 만만찮다.
문득 곶자왈 취재를 할 때 기억이 스친다.
2003년 이맘때다. 제주시 민오름일대 곶자왈 탐사를 하려는데 한달여넘게 주말이면 비와 눈이 내려 탐사를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유독 곶자왈 탐사는 궂은 날씨로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비록 곶자왈을 사랑하는 순수한(?) 목적을 내세운 탐사라 하더라도 이방인의 발길에 곶자왈은 아파할 수밖에 없기에 곶자왈을 조금이라도 아픔에서 지켜주려고 때마침 눈과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닐까?
탐사를 떠나는 발길부터 새롭게 해야 할 일이다.

추운 날씨 탓일까 지난번 탐사보다는 적은 13명이 참가했다.
2차 탐사지는 대정읍 구억리와 남제주군 서광리 일대 곶자왈 지대다.
녹차단지에서 구억리 쪽으로 왕복 2차선 아스팔트길이 양쪽에 곶자왈지대를 가르며 나있다.
겨울이라 울창한 모습은 아니지만 상록수가 군데 군데 숲을 이루고 있다.
지난 여름 탐사때 푸른 잎이 일렁이는 곶자왈 숲이 다시 살아온다.
탐사반원들은 구억리쪽으로 내려오다 왼쪽 곶자왈로 들어갔다.
저지곶자왈 동쪽 끝자락쯤 되는 곳이다.
이방인의 침입을 막으려는 듯 나있는 찔레와 꾸지뽕나무, 초피나무 등 숲속 경계병을 뚫고 들어가니 종가시나무와 참가시나무, 참식나무 따위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겨울에도 푸른 잎은 하늘을 가려 궂은 날씨와 함께 어슴푸레한 기운을 만든다.
내리는 눈이 곶자왈에도 어김없이 찾아들고 있다.
고운 소매자락을 타고 흐르는 선율처럼 내리는 눈에 묻혀오는가 향긋한 꽃냄새가 겨울바람에 실려온다.
눈인 듯 꽃인 듯 하얀 꽃망울을 터트린 백서향이 달콤한 내음을 내리는 눈 속에 실려 보내고 있다.
채 봄이 오기전인 2~3월에 가지 끝에 흰색꽃이 모여 피는 백서향은 고운 빛과 향긋한 꽃내음이 좋아 관상용으로 사랑받는 상록관목이다.
겨울 흰 눈만큼이나 하얀 꽃망울을 터트리고 그 달콤한 향기를 자랑하는 백서향. 하지만 굳이 찾아올 벌과 나비도 드문 겨울에 앞서서 꽃을 피우는 그 뜻은 무엇일까.
곶자왈 지대는 목장으로 개간한 곳과 숲 형태로 남아있는 곳이 혼재한 형태다.
숲가장자리에는 예덕나무와 꾸지뽕나무, 찔레 등 가시덩굴류나 양수들이 혼재하고 있으며 숲 속은 상록활엽수림형태를 보인다.
곶자왈 지형이 깊지 않고 용암류도 변화가 심하지 않은 탓에 비교적 햇볕을 받거나 건조한 지대에 자라는 식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백서향이 곳곳에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비롯해 석위나 우단일엽, 세뿔석위, 부처손, 가는쇠고사리, 큰개관중, 더부살이고사리 종류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김대신 연구사가 환경부 보호식물인 개가시나무를 찾아내고 일행을 부른다.
벌채된 후 다시 자란 것인데 원래 나무는 꽤나 큼직하다.
이 일대는 개가시나무 80여그루가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도내 개가시나무 최대 자생군락지다.
탐사지역을 이리저리 다니는데 바닥을 파고 만들어놓은 집터가 발견됐다.
다른 곳에서 발견된 주거흔적들은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이곳은 바닥을 직사각형 형태로 1m가량 파서 만들어 놓았다.
가로와 세로가 2m,1.5m 가량되는 규모에 돌을 가지런히 쌓은 것으로 보아 꽤나 정성스레 만든 것 같다.
과거 숯을 구울 때 임시주거용으로 쓰던 것이거나 4.3때 쓰던 것으로 생각되나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용도를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곶자왈 특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용암지형을 찾아 좀 더 이동했으나 그리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탐사지로 찾은 곳이 곶자왈 가장자리인 탓이다.
길건너 맞은편 곶자왈 지대로 들어갔으면 좀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으련만 여전히 추운 날씨가 오랜 탐사를 허락지 않는다.
인간에게 곶자왈을 쉬 보여주지 않으려는 하늘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까.
아쉬운 탐사를 마치면서 이번 탐사에 한 가지 의미를 두고자 한다.
이번 탐사지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이곳이 제주도가 추진하는 조지워싱턴대 제주분교 예정지라는 이유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는 캠퍼스 조성 사업 후보지로 제주를 선정, 제주도 및 남제주군과 캠퍼스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지난해 제주도와 체결한 상태다.
조지워싱턴대는 동북아 지역 인재 양성 인프라와 종합적인 산·학·연 기지를 만든다는 목적아래 제주 캠퍼스 타운을 설립하고 창업단지·상업단지·IT단지·관광단지·실버단지·교육단지 등을 조성키로 했다.
조지워싱턴대 캠퍼스 예정지가 바로 오늘 탐사한 곳을 포함해 대정읍 구억리 산1 일대 곶자왈지대다.
도와 남제주군은 캠퍼스 유치를 위해 군유지 115만평무상 임대하고 이 부지를 투자진흥지구로 지정하는 한편 행정지원과 세제혜택을 제공키로 했다.
향후 연구단지 및 관계 산업시설 유치를 함으로써 수익사업 가운데 지역 주민이 참여 가능한 사업과 고용창출 및 수익증대 실현이 제주도와 남제주군이 캠퍼스 유치에 거는 기대다.
제주가 살길은 자유도시 개발과 외자유치라는 과거 박정희식 개발독재 논리가 여전히 정답인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 캠퍼스 유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곶자왈지대 115만평이 100년동안 외국자본에 공짜로 임대되고 그곳에 개발이 이뤄질 경우 곶자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회원 모두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과제를 안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