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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제형(馬蹄型) 분화구에서 생명수가 솟아나는 궤물오름
글쓴이 곶자왈 
구분 지질
2008-09-19 오후 1:17:12
 

마제형(馬蹄型) 분화구에서 생명수가 솟아나는 궤물오름


(궷물오름, 怪水岳)


 


동쪽(경찰특공대)에서 바라 본 궤물오름의 전경




경찰특공대 주변 도로에서 바라 본 궤물오름의 전경




남쪽에서 바라 본 궤물오름의 전경




위    치 애월읍 장전리 산136-1번지 일대


면    적 138,366㎡


표    고 597.2m(둘레 : 1,388m, 저경 : 480m)


비    고 57m


형    태 분석구(말굽형)




궤물오름 초입의 전경




궤물오름 표지석




명칭 유래 : 오름 북동쪽사면에는 ''궤물(궷물)''이라 부르는 샘이 있다. 오름 동쪽 굼부리(분화구)에 ''궤물(궷물)''이라는 샘이 솟아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궤''는 ''궷''의 ''ㅅ''(사이시옷)을 표기에 반영하지 않았다. ''궤''는 ''땅 속으로 팬 바위굴''을 뜻하는 제주도방언이다. ''궤믈>궤물'' 또는 ''궷믈>궷물''은 곧 ''궤에서 솟아나는 물''의 뜻이다. ''궤물'' 또는 ''궷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 오창명, 1998).


 궤물오름을 소리나는 대로 한자로 지으려다 보니 한자 표기가 怪水岳(괴수악)이다. ‘기이할 괴’, ‘물 수’, ‘큰산 악’으로 표기되어 있어 우리말 표현과는 사뭇 거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차라리 분화구 내에서 용천수가 솟아나는 오름이기 때문에 샘 궤자를 사용하여 氿水岳(괴수악) 혹은 분화구의 형태가 삼태기를 닮았기 때문에 삼태기 궤자를 사용하여 籄水岳(괴수악)으로 사용하였으면 어떨까?라고 반문해 본다.




오름 가는 길 : ① 어승생수원지(한밝저수지)에서 평화로(1136번 도로)를 연결하는 제1산록도로 중간지점의 도로변 남쪽(철탑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우리학교에서 궤물오름으로 가는 도로




② 우리학교에서 출발 : 학교입구에서 남쪽(한라산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원광요양원 방향으로 진입하다 보면 삼거리에 ‘UTJS JEJU 골프빌리지(500m)’ 표지판이 보인다. 골프빌리지 방향으로 좌회전 한 후 골프빌리지를 바로 지나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는데 또 다시 우회전 하여 한라산 방향으로 진입하다 보면 산록도로가 나옴. 여기에서 바로 우회전하면 하얀색 건물인 ‘게스트하우스’가 있고(맞은편엔 산세미오름 표지석이 있음) 계속 서쪽 방향으로 직진하다보면 태양에너지 단지와 창암재활원 입간판이 나옴. 이 입간판을 지나면 ‘제주경찰특공대 신축공사현장’ 입간판이 나오면 속력을 줄여 커브 표시 표지판을 지나 왼쪽에 ‘궤물오름 표지석’이 있다.




마제형(馬蹄型) 궤물오름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하여 북제주군 애월읍 장전리 산 136-1번지 일대에 궤물오름(표고 : 597.2m 비고 : 57m)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현재의 궤물오름이 형성되기 이전의 하부의 지층은 하위에서 상위의 순서로 불국사화강암이나 용결응회암으로 이루어진 기반암, 석영과 장석 입자로 이루어진 미교결사암층, 해양에서 만들어진 퇴적층인 서귀포층 그리고 화산활동에 의해 분출되어 만들어진 현무암이 분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층이 퇴적된 이후, 연약권 하부에서 방사성원소의 붕괴와 같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암석이 녹아 마그마가 들어있는 마그마 방(magma chamber)을 만들어낸다.


 마그마 방에 들어있던 마그마의 밀도가 낮아지면 지각의 약한 틈을 따라 상승하는 화도가 만들어지고 화도에서 분출된 마그마가 직접 대기중으로 분출하는 스트롬볼리안 분출을 하면서 스코리아(scoria, 제주어로 송이)를 분출시킨다. 스코리아는 연속적으로 분출되고, 분출된 스코리아는 화도 주변에 쌓여 분석구를 형성한 후 분화구를 만들어 냈다.




궤물오름의 형성과정 모식도




 궤물오름 분화구가 만들어진 이후에 분화구 북동쪽 외륜이 파괴되어 마제형 분화구를 만들었다.




궤물오름 트레킹 코스




오름의 경관 : 말굽형 분화구를 가진 궤물오름(비고 57m)은 애월읍 관내 50개 오름 가운데 비고가 13m로 가장 낮은 눈오름(장전리 1756번지 일대)과 말젯오름(과오름, 곽지리 산 14번지 일대) 이후 15번째로 낮은 오름으로서 애월읍 장전리 공동목장조합이 소유하고 있다.


 주변의 노꼬메오름(큰노꼬메 비고 234m, 작은노꼬메 비고 124m)과 산세미오름(비고 102m) 역시 말굽형 분화구를 갖고 있지만 궤물오름에 비해 산세가 험하고 높다. 궤물오름의 비고가 낮다보니 오름의 초입부근은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어 이 곳이 오름인지 아닌지를 잘 구분하기 어렵지만 입구로 들어서면 오름의 형태를 조금씩 찾아 볼 수 있다. 오름의 형태는 초승달이 아닌 그믐달 모양을 하고 있다.


 오름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 정상은 물론 큰노꼬메오름, 작은노꼬메오름, 산세미오름 그리고 바다위에 떠 있는 오름인 비양도를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는 제주경마공원에서 경마하는 모습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다.






궤물오름 초입부에서 바라 본 작은노꼬메오름의 전경




궤물오름 정상에서 바라 본 산세미오름의 전경




궤물오름 정상에서 바라 본 경마장의 전경




화산탄을 이용하여 쌓아 놓은 산담




궤물오름 분화구에 형성된 습지




자연환경 :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산체의 바깥쪽 사면에는 해송과 삼나무가 부분적으로 조림되어 있고, 분화구가 있는 북동쪽사면에는 자연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궤물''이라 부르는 샘이 있다. 궤물오름의 형상은 마치 말의 발굽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마제형(馬蹄型, 말굽형)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오름정상에 제비꽃, 남산제비꽃, 자주괴불주머니, 개구리발톱, 새끼노루귀, 개별꽃, 벌깨냉이, 솔이끼, 할미꽃 등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하여 6월에는 인동, 양지꽃, 미나리아재비, 구슬붕이가 9월엔 이삭여뀌, 산짚신나물, 더덕, 으아리가 아름다운 꽃잎과 향기를 품으면서 곤충을 유혹함과 아울러 오름을 찾는 사람들의 눈과 코를 즐겁게 해 준다.


 또한 해송과 삼나무가 부분적으로 조림된 부분을 제외한 정상부근과 말굽형 분화구(굼부리)내인 습지와 궤물이 있는 곳에는 가막살나무, 곰의말채, 까마귀베게, 꾸지뽕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산수국, 생강나무, 찔레, 참개암나무, 층층나무, 비목, 비자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천연림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봄이 되면서 궤물오름을 찾아오는 야생조류로는 제주큰오색딱따구리, 박새, 큰부리까마귀, 제주휘파람새, 꿩을 비롯하여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뻐꾸기, 직박구리, 큰부리까마귀, 검은등뻐꾸기, 두견이, 멧비둘기, 동박새가 날아들어 향연을 펼치곤 한다.


 궤물오름 습지에는 물매암이, 동양달팽이, 노루, 산개구리, 도룡뇽, 거머리, 왕잠자리, 줄무늬물방게, 비바리뱀 등이 알콩달콩(?) 살고 있다.





가막살나무




산수국




때죽나무




까마귀베게




물봉선




산딸나무




말굽형 분화구내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인 궤물




용천수를 이용하기 위한 시설물이 갖추어져 있음




분화구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




궤물오름 용천수 이용시설 기념비




궷물 : 동굴처럼 안으로 조금 들어간 지점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제주사람들은 궷물이라 불렀다. ‘궤’는 위로 큰 바위나 절벽으로 가리워지고 땅속으로 깊숙하게 패여 들어간 굴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물 이용 역사 : 제주도 수도의 효시인 정방간이수도는 1926년 5월에 일본인 西鄕武十이 현재 정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용천수를 서귀동 일부지역으로 자연유하 시켜 이용하였다.


 궤물오름의 궤물에는 용천수를 이용하기 위하여 시설물을 갖춘 후 昭和十二年에 기념비를 세웠다. 궤오름 분화구에서는 2군데서 용천수가 흘러나옴에 따라 중앙부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와 오른쪽 실개천처럼 흐르는 곳 상부에 시멘트로 수로를 만들어 물을 이용하였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昭和十二年이면 서기 1937년이다. 每日申報 1937년 6월 2일자에 “제주지방에 한발로 보리 흉작, 농민은 극도로 불안”이라는 기사가 나와 있다. 이처럼 제주도에는 물이 귀하여 식수는 물론 농업용수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물을 이용하기 위한 치수 정책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每日申報 1937년 2월 8일자에는 ‘한라산 碧溪水’이용 계획 현지답사를 2월 7일부터 일주일간 실시했으며 東亞日報 8월 7일자에는 ‘제주도개발계획은 용수조사가 급선무’라 하고 있다.


 이처럼 제주도의 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東亞日報 6월 8일자에 6월 13일부터 제주도 개발의 중요관건인 용수개발을 위해 2만6천3백여원의 예산으로 일본중앙공업시험소에서 제주도용수 조사를 시작하였다. 대정면 상모리(30m), 표선면 성읍리(100m), 구좌면 송당리 하동(100m)에서 시추조사를 함은 물론 용천수와 정호 63개소에 대한 수질조사를 실시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소중한 삶의 원천이자 생명수인 물을 찾아내고 이용하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음을 알려주는 제주도내에 용천수 및 치수관련 기념비가 애월읍 관내 몇 몇 군데에 남아 있다.


        昭和十一年, 애월읍 광령리 절물 기념비


        昭和十一年, 애월읍 하가리 동지새미 기념비


        昭和十二年, 애월읍 장전리 궤물 기념비


        昭和十五年, 애월읍 유수암리 거문덕이물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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